[한겨레신문 왜냐면]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10주기에 부쳐 / 정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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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10주기에 부쳐 / 정미례

 

여성들은 여전히 죽어나가지만 업소들은 영업을 지속하고 업주는 어떤 처벌도 안 받는다
그 착취구조는 10년 전과 같다

한겨레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래도 역사와 사회가 지속되는 한 잠시잠깐 잊혀졌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또 누군가는 기억하고 증언하면서 또다시 죽은 희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도 한다.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10주기가 되었다.  2000년 9월19일 대한민국 전라북도의 작은 도시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지역에서는 사창가를 이렇게 불렀다)에 위치한 성매매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의 여성이 희생당했다.

단순한 화재사건으로 성매매 여성 5명이 질식사한 것으로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감금, 착취, 성매매 강요 및 인신매매, 그리고 참혹한 여성들의 인권 상황은 성매매가 얼마나 여성들에게 폭력적인가를 죽음으로써 고발해냈다. 대명동 화재참사는 성매매가 여성들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확인시켜주었다. 2004년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여성들의 희생과 죽음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2002년 군산 개복동 화재로 14명의 여성이 희생되는 대형참사와 부산 완월동, 2005년 서울 하월곡동(속칭 미아리), 광주 송정동(속칭 1003번지) 화재사건 등으로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업소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10년, 성매매방지법 제정과 시행 6년이 지난 오늘은 과연 어떠한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여성들의 죽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포항 남부지역 유흥업소 밀집지역 업소에서 일하던 여성 3명이 사채 빚과 연대맞보증으로 연쇄자살한 사건, 성매수자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여수 등의 사건은 어떠한 성매매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죽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성산업 착취구조가 존재하는 한 여성들의 죽음과 희생 또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산업자본은 교활하고 교묘하게 합법적인 영업을 하는 것처럼 법망을 피해가면서 그물망보다 촘촘한 착취구조 속으로 여성들을 유입시킨다.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유흥주점이나 안마시술소 등의 간판을 내걸고 합법적인 업소에서의 성매매 알선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실은 우리 모두를 공범자, 공모자로 만든다. 여성들은 죽어나가고 있지만 업소들은 여전히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업주들 또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업주들의 이득은 그대로 보존한 채 여성들이 사채, 빚, 선불금, 연대맞보증에 묶여 희생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강은 흘러야 물고기와 인간이 살 수 있고, 성산업 착취구조는 해체되어야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성산업의 확산을 막고, 착취구조를 해체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와 함께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환경과 조건들을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한 우리들의 각성과 실천이 더욱 절실하다.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10주기에 다시 한번 우리의 각오를 다지는 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책임일 것이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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