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신분 노출되면 누가 쉼터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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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과 불평등이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피해자가 숨어야 할 처지다. 가족이 알게 될까봐, 가해자와 또다시 마주칠까봐, 업주가 자신을 찾아낼까봐 힘들어하는 폭력 피해자에게 치유와 회복을 위한 안전한 쉼터는 생존과 직결된다.

폭력 피해 여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국가 책임의 업무를 여성가족부가 추진해야 하는데도 여성 폭력 관련 시설을 사회복지시설로 보고 사회복지사업법상 규정을 일방적으로 적용해 쉼터 시설 입소자들의 생계와 의료 지원은 보건복지부가 집행하는 이중체계를 유지해 왔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행정 효율화와 국민기초 수급권자들의 이중 수급과 부정 수급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모든 사회복지시설에 사회복지정보시스템(이하 사복시)이라는 인터넷망의 전자방식을 사용하도록 하고, 정부는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하 사통망)이라는 행정망에 정보를 집적해 5년 동안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여성폭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설을 관리하고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사복시와 사통망)을 일방적으로 적용해 여성 인권과 권익 보호라는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산조회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에는 정보의 보유 주체와 보유 기간, 파기 방법을 고지하지 않고 있다. 설령 이 내용을 고지한다고 하더라도 다급한 상황의 입소자는 내심 동의하고 싶지 않아도 동의한다고 서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단 며칠 동안 쉼터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보가 5년 동안 사통망에 남는다면 다급하게 쉼터로 피신해야 할 경우 어찌 망설여지지 않겠는가? 이는 효율성에 대한 욕구와 인권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복지업무의 효율성과 위기에 처한 여성의 인권을 맞바꾸는 개인 정보 제공과 집적의 방식은 피해자에게는 선택이 아닌 강요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은 개인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해 프라이버시 영향평가제도를 각 행정기관에 의무적으로 도입해 개인 정보 침해 가능성에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개인 정보 수집과 집적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우선 고려해 영향 평가와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들었어야 하는데도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전예방조치와 합의가 미흡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시스템 사용만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전문가들과 여성가족부, 관련 단체, 피해자들이 참여해 사전영향평가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안전성을 확보한 뒤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1126호 [오피니언] (2011-03-18)